사울 카넬로 알바레즈 : 권투로 써낸 인생의 서사

BOXING INSIDE
2025-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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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카넬로 알바레즈: 권투로 써낸 인생의 서사


어린 시절과 복싱 입문

카넬로 알바레즈(본명: 사울 알바레즈)는 1990년 7월 18일 멕시코 할리스코 주 과달라하라 교외에서 태어났다 . 여덟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가족 농장에서 말을 타며 자랐다. 붉은 머리카락 때문에 어릴 적부터 “히카마 콘 칠레”(매운 소스를 뿌린 멕시코 과일 간식) 같은 별명으로 놀림을 받았고, 주근깨 투성이의 외모로 인해 또래 아이들의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 내성적이었던 소년은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여섯 살 무렵부터 과달라하라 시내 버스에서 아이스크림 막대를 파는 일을 하기도 했다 . 당시 그는 “붉은 머리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을 다르게 쳐다보고 말을 했다”고 회상했다. “앞을 지나가려고 하면 사람들이 꼬집곤 했어요. 뭔가 내 인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이 늘 있었죠”라고 알바레즈는 말한다.

“…I was a redhead… There was always this sense of feeling something was off in my life.” 

괴롭힘은 계속되었고, 형 리고베르토는 막내 동생에게 주먹으로 맞서라고 조언했지만 소심했던 소년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 그러나 11살 되던 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그는 결국 놀리던 아이와 주먹다툼을 벌였고, 상대의 코피가 터질 때까지 주먹을 휘둘렀다 . 어린 사울은 그 순간 격투의 전율을 처음 느꼈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회상했다.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때 모든 것이 바뀔 거란 걸 알았어요.”

“I liked it too much… I knew everything would change.”

이 싸움을 계기로 알바레즈는 싸우는 법을 배웠고, 더 이상 거리 싸움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알바레즈 가문은 모두 복싱과 인연이 깊었다. 형제 7명 중 6명이 프로 복서가 될 정도로 ‘복싱 가족’이었고, 그 중 장남 리고베르토 알바레즈는 사울이 존경하던 복서였다 . 10살 때, 프로 복서 생활을 시작한 리고베르토 형은 집으로 돌아오며 막내 사울에게 낡은 복싱 글러브 한 쌍을 건넸다  . 축구 선수를 꿈꾸던 소년은 선물 받은 글러브를 끼고 허공에 주먹을 뻗어 보았고, 이를 지켜보던 리고베르토는 “이 아이는 타고난 싸움꾼이다”라고 속으로 놀랐다고 한다

“Me dije: éste es un peleador natural” 

리고베르토는 동생에게 “너는 아이스크림 장수가 아니라 복서가 될 거야”라며 권투를 권했고 , 이때부터 사울 알바레즈의 운명이 결정지어졌다. 곧 리고베르토는 막내 동생을 할리스코의 한 허름한 체육관으로 데려갔다 . 그곳이 훗날 세계적인 복싱 스타가 탄생하는 출발점이 된다.



주안카틀란의 1)줄리안 마글달레노 체육관에서 알바레즈는 전설적인 트레이너 호세 ‘체포’ 레이노소와 그의 아들 에디 레이노소를 만나 본격적인 복싱 수련을 시작했다 . 체포는 주근깨투성이의 11살 소년에게 “카넬로(Canelo)”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스페인어로 계피를 뜻하는 이 단어는 멕시코에서 머리색이 붉은 사람에게 흔히 붙이는 별명인데, 체포는 이 별명을 친근한 애칭처럼 불렀다 . 아버지 산토스 알바레즈는 어린 막내아들이 위험한 운동을 시작하는 것을 걱정했지만 , 사울의 재능은 곧 두각을 나타냈다. 첫 아마추어 시합에서부터 연속 KO승을 거두더니 2004년 멕시코 주니어 전국대회에서 은메달, 2005년 대회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 불과 15세에 주니어 전국 챔피언이 된 알바레즈는 아마추어 전적 44승 2패를 남기고, 더 이상 겨룰 상대를 찾기 어려워지자 곧장 프로 전향을 결정한다. 그의 스승 에디 레이노소는 “맞붙어줄 만한 주니어 선수들을 도저히 구할 수 없었다”고 회상한다 .


프로 데뷔와 성장

2)알바레즈는 15세의 나이로 프로 복싱에 데뷔했다. 2005년 10월 29일, 처음 오른 프로 무대에서 18세의 상대 아브라함 곤잘레스를 4라운드 TKO로 제압하며 승리로 장식했다 . “그 경기를 아주 선명히 기억합니다. 내 프로 경력을 시작하게 해준 멋진 싸움이었어요”라고 그는 회상한다.이듬해부터 멕시코 국내 무대를 누비며 승수를 쌓아간 알바레즈는 19개월간 13전 13승(11KO)이라는 놀라운 상승세를 보였다 . 심지어 그의 트레이너는 공식 전적에 잡히지 않은 추가 경기 10전을 모두 KO로 이겼다고 주장할 정도로, 10대 소년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싸워 이겼다 . 당대 유망주를 지켜보던 한 프로모터는 “이 아이는 한평생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복서”라고 감탄했다 .


하지만 어린 나이에 성인 프로들과 맞서면서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한 번은 16세의 알바레즈가 문신 투성이의 건장한 20대 복서와 맞붙게 되자, 트레이너 체포는 걱정된 나머지 링에 오르기 전 이렇게 경고했다. “상황이 위험해지면 내가 경기를 바로 멈출 거다.” 그러나 알바레즈는 1라운드부터 거침없이 바디 공격을 퍼부어 곧바로 그 사내를 쓰러뜨렸다 . 이어 코너에 있는 체포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를 건넸다. “보세요, 걱정할 것 없잖아요”라며 싱긋 웃어 보인 것이다.

“Look… There is your fucking worry.”

10대 시절부터 두려움 없는 파이터였던 알바레즈는 이런 배짱과 재능을 바탕으로 멕시코 복싱계에서 점점 명성을 쌓아갔다.


알바레즈는 2009년까지 멕시코에서만 40전 이상의 경기를 치르며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체급도 웰터급(147파운드)부터 주니어 미들급(154파운드) 사이를 오르내리며 다양한 상대를 경험했다 . 2008년 6월, 고향 과달라하라에서 치른 경기에서는 훗날 경량급 챔피언이 되는 미겔 바스케스를 한 번 더 꺾었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17세에 불과했다 . 알바레즈의 커리어는 일찌감치 멕시코를 넘어 미국 프로모터들의 눈에도 띄기 시작했다. 2010년 미국 데뷔전을 치른 그는 곧 전 세계 복싱 팬들에게 ‘카넬로’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세계 무대에서의 약진과 첫 번째 패배


2011년 3월, 20세의 알바레즈는 영국의 매튜 해튼을 판정으로 누르고 WBC 세계 초청(슈퍼웰터급) 타이틀을 차지했다 . 이로써 그는 불과 스무 살에 세계 챔피언 벨트를 거머쥐며 당시 WBC 역사상 최연소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이 되었다 . 이후 알바레즈는 같은 체급에서 전승 행진을 이어가며 타이틀을 5차례 방어했고, 2013년 4월에는 미국의 오스틴 트라우트를 꺾고 WBA 타이틀까지 통합했다  . WBC·WBA 통합챔피언이자 40전 무패의 전적으로 승승장구하던 알바레즈는 이제 세계 복싱계의 이목을 한몸에 받는 스타로 부상했다.


이 무렵 알바레즈에게 찾아온 첫 번째 커리어 전환점은 복싱 역사에 남을 전설과의 대결이었다. 2013년 9월 14일, 그는 무패의 복싱 황제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와 라스베이거스에서 맞붙었다. 당시 알바레즈는 23세의 젊은 챔피언, 메이웨더는 36세의 노련한 챔피언으로 세기의 대결이 성사된 것이다. 경기 전 메이웨더는 특유의 말솜씨로 도발했지만, 알바레즈도 물러서지 않았다. 계체량 행사에서 “준비는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자 “나는 태어날 때부터 준비돼 있었다

"I was born ready"

고 당차게 외쳐 관중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 결과적으로 이 경기에서 알바레즈는 메이웨더의 노련함과 수비 기술을 뚫지 못해 프로 데뷔 후 첫 패배를 맛보았다(12라운드 판정패). 겸손히 패배를 인정한 그는 경기가 끝난 뒤 메이웨더를 가리켜 “그날 밤 그는 더 나은 선수가었다. 훌륭한 파이터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 덧붙였다. “하지만 나는 그 시합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 패배가 나를 멈추게 하지 못할 것이다. 언젠가 내가 세계 최고가 될 거라고 다짐했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 실제로 알바레즈는 “패배를 하더라도 배우는 것이 있다면 진 것이 아니다”라는 마음가짐을 유지했다. 그는 훗날 이 첫 패배에 대해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 경험을 통해 많이 배웠다”며 “경험을 쌓았기에 난 진 것이 아니다. 배웠기에 다행”이라는 취지로 회고했다 . 그에게 메이웨더전 패배는 커리어의 큰 좌절이었지만, 동시에 자신을 한층 성장시키는 귀중한 교훈이 되었다.


패배 후 알바레즈는 급격한 기량 향상을 보이며 재도약했다. 메이웨더전에서 드러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수비 기술과 카운터펀치 전략을 연마했고, 훗날 그의 경기는 한층 원숙해졌다 . 이후 알바레즈는 “늘 차분함을 유지하고 냉정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하며, 큰 경기를 앞둔 심리적 압박도 이겨낼 줄 아는 성숙한 선수로 거듭났다

“I have to stay calm, cool, and collected”

메이웨더전에서의 패배를 통해 그는 세계 최정상급 복서의 벽을 실감했지만, 이를 계기로 더욱 완성형 복서로 발전하게 된다. 알바레즈는 자신에 대해 쏟아지는 관심과 명성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실력 향상에 집중했다. “나는 결코 명성이 들려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오직 노력만을 믿을 뿐이다”라고 그는 강조한다

“I never believe what fame tells me. I believe only in hard work.”



주요 경기와 커리어의 전환점

메이웨더에게 패한 후, 알바레즈는 연승 행진을 재개하며 다시 정상에 올랐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앙골로, 라라, 커크랜드 같은 강자들을 차례로 무너뜨린 그는, 2015년 11월 푸에르토리코의 전설 미겔 코토와 맞붙어 판정승을 거뒀다 . 이 승리로 WBC 미들급 타이틀을 획득하며 2체급 제패를 이뤄냈다 . 한편으로 알바레즈는 자신보다 한 체급 아래인 웰터급의 스타, 아미르 칸과 이례적으로 155파운드 캐치급 경기를 치르기도 했는데, 2016년 5월 이 경기에서 칸을 통쾌한 KO로 눕히며 화제를 모았다. 같은 해 9월에는 다시 체급을 내려 영국의 리암 스미스를 KO로 꺾고 WBO 주니어 미들급 타이틀까지 차지했다 . 이렇게 2016년까지 세 체급에서 세계 타이틀을 손에 넣은 알바레즈는 명실상부한 파운드 포 파운드 슈퍼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그의 커리어에는 또 다른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팬들과 언론은 알바레즈에게 당시 미들급 최강자로 4) 군림하던 겐나디 골로프킨(GGG)과의 대결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알바레즈는 “나는 GGG와 싸울 것이고, 결국 그를 이길 것이다. 하지만 인위적인 시한에 쫓겨 링에 오르진 않을 것”이라며 성급한 일정보다 철저한 준비를 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I will fight ‘GGG,’ and I will beat ‘GGG,’ but I will not be forced into the ring by artificial deadlines.”

 결국 2017년 9월, 라스베이거스 T-모바일 아레나에서 두 거물의 첫 만남이 성사되었다. 경기는 기대대로 접전이었고 12라운드 혈투 끝에 무승부 판정이 나며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판정 결과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지만, 알바레즈는 “팬들이 누구가 이겼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며 결과에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재대결을 준비하던 2018년 초, 알바레즈 커리어에 위기가 닥쳤다. 2월 훈련 도중 실시한 도핑 검사에서 금지약물 클렌부테롤에 대한 미량 양성 반응이 나온 것이다. 알바레즈 측은 즉시 “멕시코산 고기를 먹는 과정에서 미량의 클렌부테롤이 체내에 유입된 것”이라 해명했고 , 실제로 멕시코 스포츠계에서 소고기 식품 섭취로 인한 클렌부테롤 양성 사례가 종종 발생한 전례가 있었다 . 그러나 네바다 체육위원회는 알바레즈에게 6개월 출장정지 처분을 내렸고, 예정되었던 골로프킨과의 재대결도 연기되고 말았다. 알바레즈는 공식 성명을 통해 고개를 숙였다. “고의로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내 실수입니다. 이 문제(멕시코 고기 오염)에 대해 충분히 알아보지 않은 잘못일 뿐이며,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그는 사과했다

“I didn’t do anything intentionally… It was my mistake, and I won’t repeat it.”

또한 “이번 일 이후로 나는 멕시코에 있을 때는 아예 쇠고기를 입에도 대지 않게 되었다”고 밝히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 알바레즈는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모발 검사를 자청했고, 장기 복용 흔적이 없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보이기도 했다  . 훗날 그는 이 일을 언급하며 “이 인생에서 쉬운 일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은 어렵다”는 깨달음을 말했다

“Nothing is easy in this life. Everything is difficult.”

큰 시련을 겪었지만, 그는 이를 딛고 더욱 단단해졌다.


5) 2018년 9월, 한 차례 연기됐던 골로프킨과의 리매치가 마침내 열렸다. 이번에는 알바레즈가 전략을 바꾸어 초반부터 정면승부를 걸었고, 접전 끝에 다수판정으로 골로프킨에게 승리를 거뒀다 . 이로써 알바레즈는 WBA(슈퍼), WBC, 링지 중량급 벨트를 거머쥐며 미들급 통합 챔피언에 올랐다 . 1년 전 무승부에 대한 설욕을 완성한 순간이었다. 골로프킨과 두 차례 명경기를 치른 뒤 알바레즈의 커리어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그는 체급 상승을 과감히 단행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체급 상승과 역대급 업적

2018년 말, 알바레즈는 슈퍼미들급(168파운드) 첫 경기에 나서 잉글랜드의 록키 필딩을 상대했다. 이 경기는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렸고, 알바레즈는 경쾌한 몸놀림과 강력한 바디 공격으로 필딩을 쓰러뜨리며 WBA(정규) 슈퍼미들급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 이어 2019년 5월에는 다시 미들급으로 내려가 IBF 미들급 챔피언 다니엘 제이콥스를 만났다. 알바레즈는 노련한 기술전 끝에 제이콥스를 판정으로 제압하고 IBF 타이틀까지 획득하며 미들급에서도 3개 기구 벨트를 보유하게 되었다 .


2019년 11월에는 커리어 사상 최중량급 도전에 나섰다. 두 체급을 올려 라이트헤비급(175파운드) 경기에 출전, WBO 챔피언 세르게이 코발레프에게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알바레즈는 경기 후반 폭발적인 레프트 훅으로 코발레프를 KO 시켰다 . 이 승리로 그는 라이트헤비급 타이틀까지 거머쥐며 4체급 제패를 달성했다. 슈퍼웰터 → 미들 → 슈퍼미들 → 라이트헤비까지 네 개 체급에서 세계 챔피언에 오른 업적은 그를 멕시코 복싱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전설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2020년에는 프로모터 오스카 델라호야의 골든보이 프로모션과 결별하고 자유계약 신분이 된 알바레즈는, 슈퍼미들급 통합 챔피언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다. 2020년 12월 영국의 캘럼 스미스를 만난 그는 유리한 신장과 리치를 지닌 상대를 압도하며 WBA(슈퍼) 및 WBC 타이틀을 획득했고 , 2021년 5월에는 빌리 조 손더스를 TKO로 꺾고 WBO 타이틀까지 차지했다 . 이어서 2021년 11월, 마지막 남은 IBF 타이틀 보유자 캘럽 플랜트마저 11라운드 TKO로 제압함으로써 슈퍼미들급 4대 기구 통합에 성공했다 . 이 순간 알바레즈는 사상 첫 슈퍼미들급 전권 undisputed 챔피언이 되었으며, 4대 기구 체제를 통틀어도 역대 여섯 번째로 한 체급을 모두 통합한 복서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 알바레즈는 이 역사적인 업적을 이뤄낸 직후 “오늘은 역사적인 밤입니다. 이 순간에 함께할 수 있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라며 감격을 나타냈다

“It was truly a historic night, and I’m so proud to be a part of it.”

또한 그는 “멕시코 출신 복서로서 4대 기구 통합 챔피언이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잘 알고 있다”며 “멕시코 복싱 역사에 남을 순간이라 더욱 기쁘다”고 말했다

 

한편, 알바레즈의 이러한 전례 없는 질주는 명성과 부도 함께 가져다주었다. 그는 복싱 역사상 가장 많은 페이퍼뷰 PPV 판매량을 올리는 흥행 스타 중 하나가 되었으며 , 2019년, 2022년, 2023년에는 6) 포브스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운동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 그러나 그에게 이러한 부와 명성은 부차적인 것이다. 알바레즈는 “명성이 주는 환상은 믿지 않는다. 나는 오직 훈련과 노력, 그리고 복싱에 대한 사랑만을 믿는다”고 거듭 강조해왔다 . 실제로 그는 7)“내 삶의 현실은 이거예요. 복싱 없이는 삶도 없습니다”라고 단언할 만큼

“This is the reality of my life. No boxing, no life.”

복싱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간다. 최고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나태함에 빠지지 않고 자기관리에 철저한 그의 태도는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알바레즈는 “스스로에게 절제를 가르치고 믿음을 가르쳐왔다. 그리고 복싱을 향한 애정을 결코 잃지 않았다. 16년 전 내가 복싱을 처음 사랑했던 그 마음 그대로다”라고 말한다

“I have taught myself to remain disciplined, to believe, and to never lose my love for boxing. I love it just as much now as I did 16 years ago.”


현재와 미래, 그리고 유산

알바레즈는 2022년 5월 커리어 두 번째 패배를 경험했다. 그는 다시 한 번 라이트헤비급에 도전하여 WBA 챔피언 드미트리 비볼과 맞섰으나, 체급의 벽과 상대의 기량을 실감하며 12라운드 만에 판정패를 당했다. 9년 만의 패배였지만, 알바레즈는 담담했다. 경기 직후 “복싱에서는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법이죠. 변명은 없습니다. 오늘은 그가 이겼습니다”라며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

“Sometimes in boxing, you win and sometimes you lose. I have no excuses. He won the fight.”

 그러면서도 그는 곧 “이번 패배가 나를 정의짓게 두지는 않을 것”이라며 재기를 다짐했다. 사실 알바레즈는 이후 곧바로 슈퍼미들급으로 복귀하여 자신의 주요 타이틀을 모두 지켜냈다. 2022년 9월에는 세번째 맞대결에서 옛 라이벌 골로프킨을 명확히 판정으로 눌렀고, 2023년에는 영국의 존 라이더 및 미국의 젬얼 찰로 등을 연달아 꺾으며 여전히 슈퍼미들급 최강자의 위용을 과시했다.


2023년 말, IBF 측의 의무 방어전 일정을 맞추지 못한 탓에 한때 IBF 챔피언 벨트를 박탈당하는 우여곡절도 있었으나, 2025년 5월 재기에 성공하여 그 벨트를 되찾았다 . 이로써 알바레즈는 통산 두 번째로 슈퍼미들급 4대 기구 통합 챔피언에 오르며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그토록 바라던 168파운드 완전체 챔피언 타이틀을 두 차례나 거머쥔 그는 이제 경량급부터 중량급까지 아우르는 독보적인 커리어를 완성했다.

알바레즈는 종종 역대 최고의 멕시코 선수와 비교되곤 하지만, 본인은 그런 평가에 겸손하다. 한 인터뷰에서 멕시코 복싱 사상 최고라는 평가에 대해 묻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나는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나만의 역사를 만들고 싶을 뿐이에요. 위대한 멕시코 복서들이 과거에도 많았고 지금도 많이 있습니다. 저는 그저 그 중 하나로 기억되고 싶을 뿐입니다”

“I don’t want to say I’m the best ever… I just want to make my own history… We’ve had a lot of great fighters from Mexico… I just want to be one of the best.”

스스로를 전설들과 견주는 대신,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그의 태도에서 진정한 챔피언의 품격이 느껴진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현재, 카넬로 알바레즈는 여전히 세계 정상급 기량을 유지하며 앞으로도 몇 년간 링 위에서 활약할 것으로 보인다. “복싱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는 그의 말처럼,알바레즈에게 복싱은 삶 그 자체다.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과 따돌림을 이겨내고 스스로의 힘으로 정상에 오른 그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쉬운 길은 없으며, 모든 것은 노력으로 이뤄진다”는 신념으로 자신을 단련해온 카넬로 알바레즈

“Nothing is easy in this life. Everything is difficult.”

 그는 이미 멕시코 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이름이 되었지만, 아직도 “역사는 현재 진행형”임을 증명하듯 오늘도 자신의 전설을 쓰고 있다. 앞으로 알바레즈가 써나갈 새로운 챕터들 또한 복싱 팬들과 스포츠 저널리스트들의 뜨거운 주목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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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1) Julian Magdaleno Gym

주안카틀란의 줄리안 마글달레노 체육관은 멕시코 할리스코 주 과달라하라의 Antigua Penal 지역에 위치한 전통 있는 복싱 체육관입니다. 이곳은 복싱 전설 사울 ‘카넬로’ 알바레즈가 14세 때 형 리고베르토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한 장소로, 그의 복싱 인생의 출발점이자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체육관의 역사와 의미
- 줄리안 마글달레노는 체육관의 이름이자, 이곳을 창립한 인물로, 멕시코 복싱계의 존경받는 트레이너였습니다. 그는 1988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제자였던 호세 ‘체포’ 레이노소가 그의 이름을 따 체육관을 설립하고 운영해왔습니다.
- 체육관은 외관상으로는 눈에 띄지 않는 소박한 건물이지만, 내부에는 오래된 링과 성모 마리아의 제단, 그리고 오스카 ‘촐롤로’ 라리오스 등 세계 챔피언들의 사진이 걸려 있어 깊은 역사를 느낄 수 있습니다.
 - 카넬로는 이곳에서 체포 레이노소와 그의 아들 에디 레이노소의 지도를 받으며 복싱 기술을 연마했습니다. 그는 이 체육관에 대해 “내가 처음으로 모든 것을 배운 곳”이라며 특별한 애정을 표현했습니다.

Gimnasio Julian Magdaleno


2)알바레즈는 15세의 나이로 프로 복싱에 데뷔했다.


3) 그는 무패의 복싱 황제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와 라스베이거스에서 맞붙었다


Floyd Mayweather Jr. vs. Canelo Álvarez


4) 군림하던 겐나디 골로프킨(GGG)과의 대결


Canelo Alvarez vs. Gennadiy "GGG" Golovkin


5) 2018년 9월, 한 차례 연기됐던 골로프킨과의 리매치

Canelo Álvarez vs. Gennady Golovkin II


6) 포브스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운동선수 명단

Forbes list of the world's highest-paid athletes


7)내 삶의 현실은 이거예요. 복싱 없이는 삶도 없습니다 “This is the reality of my life. No boxing, no life”

Saúl ‘Canelo’ Álvarez: ‘This is the reality of my life. No boxing, no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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